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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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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2일 00시 01분 등록

처음에 우리는 그들이 장모와 사위 그리고 딸의 관계인 줄 알았다. 서른아홉이나 되는 실제 그 집의 막내는 10년은 젊어 보이는 앳된 인상을 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새댁이기나 한 것처럼 말이 없이 조용조용 귓속말만 속삭이고는 했다. 엄마처럼 자상하게 보살피는 그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올해 쉰셋의 누이는 얼마 전에 유방암을 앓았으나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절제하지 않고 병을 다스리고 있다고 하였다. 병치레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소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이리라. 나이 든 사위 같았던 중간의 그들 가운데 올해 쉰이 되었다고 하는 사내는 당신 가족 6남매 가운데 평소 배짱이 잘 맞는 누이들과 함께 여행을 오게 되었노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해서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들 일행의 가족관계를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자신은 자식이 없노라고 일반적으로 대부분 직장이나 일에 대한 소개보다 자신의 신상에 대해 먼저 소개하였다. 아마도 낯선 곳의 낯모르는 사람에게나 토할 수 있는 자신의 가슴속 깊은 응어리 같은 숨김없는 갑갑증의 하나인 발설일지도 모르겠다. 그 생김새가 둥굴둥굴 속 넓고 후덕하며 제법 삶에 여유가 있어 보여 돈 많이 벌어놓고 앳된 색시 얻어 늦은 장가를 들고는 장모와 함께 여행하는 사위쯤으로 비춰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말은 거의 없고 사람들의 말에 눈가를 연신 웃음으로 만발하는 모습이 우리 집 큰 오라비를 닮아서 내게는 낯설지 않은 인상이었다. 외로움 가득했을지 모를 사내의 웃음은 그러나 전혀 가식적이거나 인공적 노력의 산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덧 세상을 달관하고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끌어안은 데서 나오는 무념무상의 해탈이면 해탈이지 거울 보며 만들고 노력하며 다듬어낸 흔적이 없다. 슬픔의 가지에서도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여 필 수 있는 것처럼 그의 미소는 가히 백만 불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간혹 얼마나 지레 짐작을 하여 좁은 잣대로 사람을 제한된 시야로 해석하고 단죄를 내리듯 찍어다 붙이곤 하는가를 사내의 타고난 미소 속에서 발견한다.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운명도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하고 느끼게 된다. 그의 팔자처럼 그의 미소도 인공의 조작이 아닌 천혜의 선물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 보면서.

사내는 부부가 함께 같은 직장에서 만나 공사인 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20여 년간 직장 생활을 해온 터라 살림이 궁할 이유는 없었던가보다. 관광 첫날부터 백만 원 대가 넘는 고무나무에서 추출했다고 하는 라텍스 침구寢具 용품 일체를 뚝딱 사드리는 판에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 일행들 대부분은 돈 많은 사위가 장모와 함께 여행하며 장모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거나 자신들의 신혼을 위하여 새로이 더 좋은 침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다. 쉰이라고는 하지만 마흔 초나 중반쯤으로나 보이는 비교적 젊어 보이는 인상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암 투병을 하는 누이에게 안쓰러운 마음으로 편한 잠자리를 거들었던 모양이다. 말은 많지 않지만 그 심중에 어려움을 보살피는 따스함이 배어있음을 느끼게 한다.

사내는 평소에는 부부가 여행을 자주 하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일이 바빠서 자매들과 함께 여행을 감행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매들은 함께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공항까지 바래다주려는 것이거니 하고 오다보니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었더라고 사내의 귀여운 깜짝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매 식사 때마다 반주용으로 빼갈 같은 삼화주, 계화주, 대나무 술 등의 중국 특유의 도수 높은 술이 따라서 나오곤 했는데 그 술의 거의 대부분을 그 사내가 다 마셔댔다. 주량이 꾀나 되어 보여 남의 일이라도 걱정이 될 지경이었으나 누이는 자기 남매들이 모이는 날이면 남자 형제들이 평소 술은 많이 마셔도 주사가 없고 또한 다음날이면 거뜬히 일어난다고 걱정을 일소시켜 주었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은 알콜성 치매 끼가 있노라고 우스개 반 진담 같은 농을 하였다. 얼핏 사내의 음주가 외로움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거나 중년의 남매가 같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리 흔한 일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어서 보기에 좋고 부럽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찌 그리하였느냐고 물었더니 6남매 가운데 가장 잘 모이는 세 사람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막내 동생은 배다른 형제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자신이 4살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계모 품에서 자랐는데 계모도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남매가 더욱 우애가 깊어진 것 같다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하였다. 6남매가 아직은 아버지가 살아계시니까 일 년이면 네다섯 번은 꼭 모이고는 하는데 그것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깨질 것 같다고 클 때와는 달리 제각각 살기 바쁘고 의견도 달라지더라고 씁쓸해 했다. 자신도 원래 아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결혼할 당시에 처가에 다른 자식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장모가 중풍을 앓고 있었고 여러 자식 가운데 아내가 맞벌이 살림을 하며 장모를 모시고 병수발 해야 하는 처지여서 일부러 아이 갖기를 미루고 거부하였다고 한다. 애시에 결혼하면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에나 자식을 갖기로 아내와 약속을 하였는데 최근에야 장모가 돌아가셨고 몇 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는 첫 아이 갖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 그만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결혼 당시의 약속이야 그렇더라도 살면서 그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리하였느냐고 묻자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한 것뿐이라고 의외로 단순하고 담백하게 대꾸하였다. 약속할 당시처럼 그저 지키는 것도 그렇게 오래 단순한 논리로서 지켜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언뜻 스친다. 또한 사내의 알콜성 치매라는 농 같은 넋두리가 왠지 어려서부터의 가족관계에 얽힌 외로움과 무관하지 않은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오랜 아픔 같아서 마음 한편이 저며 옮을 느낀다. 혹시나 내 아이는 장래 어떻게 살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가이드는 어버이날 이라며 우리 일행에게 관광버스 안에서 과일을 선물하여 주고는 내려 함께 길을 걸으며 이들 삼남매 가운데 하나인 사내에게 어찌하여 부모님을 보내드리지 않고 남매들끼리 왔더냐고 눈치 없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사내는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 세계 일주를 하다시피 안 다니신 데가 없어서 빠듯한 살림살이에 그 뒷바라지하기도 그동안 몹시 힘들었노라 회상하였다. 자신도 여행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국내도 다 못 돌아봤는데 해외여행은 무슨 놈의 해외여행이냐며 기껏해야 출장이나 다니며 살았는데, 작년부터 이집트며 중국 등을 다니기 시작했노라고 술회하였다. 그러면서 보고 듣고 다니지 않고 그동안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사고를 좁게 하는 지를 이해하게 되었노라고 하였다.

사내의 말을 듣자 아이들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 언젠가에 대한 나의 계획과 소원이 언제쯤이나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꿈과 회한이 함께 뒤범벅되어 밀려든다. 그리고 염려 이전에 더 먼저 잘 살아내야겠다고 하는 다짐과 사명이 함께 뇌리에 꽂힌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간간히 나누다 여행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다. 또 다른 가족들도 나름 특색이 있고 재미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보통의 사람들이었고 나름 씩씩한 삶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는 소시민들의 애환이 함께하는 즐겁고 기쁜 여행이었다. 모두를 서로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나서지 않은 채 묵묵히 헤어져 돌아왔다.

해외여행은 아니지만 나는 25년 쯤 전에 아버지의 환갑에 즈음하여 남해 일대 여행을 아버지와 둘이 함께한 적이 있었다. 그 후 그 여행은 아버지와 딸의 여행으로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혼 후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서는 정동진 기차여행을 아버지와 함께 했다. 일출을 보며 서로의 신년 계획을 짜기 위함이었다. 아마 그것도 벌써 10년 쯤 전의 일이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나 이렇게 셋이서 함께 여행을 하기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가끔 작은 오빠 내외가 우리 가족을 불러 함께 여행하는 일 외에는 힘이 든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부러라도 자주 모임을 주선하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꼬부라져가는 부모님의 어깨와 등, 늘어진 살가죽과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힘이 지금보다 더 너무 애처롭고 안쓰러워지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사남매의 모임에도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내 삶부터 잘 돌보아야 하겠다. 내가 빠지면 그릇에 이 빠진 듯 안타까워하는 부모님과 은연중 모임을 기피하며 외떨어져 지내온 삶들을 털어내고 부모님을 편히 하는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해 나가야 하겠다. 나 때문에 늘 걸려하지 않도록.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할 여행에 대해서도 차츰 생각해 보자. 너무 어렵고 먼 일로만 생각하기보다 바람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삶으로의 발을 차근히 내딛어 보자. 우선은 내게 주어진 나의 길을 잘 살아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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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8.05.12 05:02:54 *.221.78.72
저도 이틀 전, 삼남매 (남동생 둘) 만났는데 아주 즐거웠어요.
우연히도 올케 들은 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는데 어렸을 적 놀던 얘기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격의 없는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남아 있는 시간, 곁에 계신 부모님 잘 살펴드리는 것, 그리고 아이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 살뜰히 준비하는 것, 써니님께 주어진 아름다운 의무입니다. 잘 해내실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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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2 15:21:17 *.36.210.11
언니의 응원 언제나 힘이 되죠. 돌아오니 오마님은 도리어 기운이 쌩쌩 하시고 저는 파김치가 되었네요. 집에 와 밥 먹으니 살 것 같다시면서. 아침에는 에고~하시면 억지로 일어나시는 듯 해도 벌써 절에 가서 빌고 시장까지 들러 오천 원 짜리 티 하나 사 입으시고 자랑하시네요. 금세 옥상으로 올라가셔서 뚝딱 거리는 소리 물 주는 소리 들려요. 중국에서 참깨 속아 샀다고 궁시렁 대시면서... ㅎㅎㅎ


그날 지하철에서 박남수님의 <인생>이라는 시 읊어주셨잖아요, 왜?

그것 왜 안 올리세요?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조만간 연락 드릴께요. 길상사에서 다시 만나요. 나무 밑에 새처럼 둘러 앉아 짹짹 이야기꽃 피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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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8.05.12 20:11:21 *.131.127.87

써니!

좋았겠네...
워째 좀 뜸하다 했제... ㅎㅎㅎ

꿈벗 모임때 보세..잉.
-갈수 있을 랑가 모르것네... ---
내 돌머리에 속터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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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2 23:04:36 *.36.210.11
꽁지머리 산!

다녀와 여장을 풀으니 몸살 난 사람 같더이다. 내가 그리도 무른 것이지요. 운동을 해야겠어라. 운동을!

글에서처럼 가끔 볼 때에도 반겨주면 좀 좋으련만 어찌 그리 목석 같고 재미 없으며 무뚝뚝 하게 폼만 잡던지. 참, 내... ㅋㄷㅋㄷ

그랴도 퍽이나 궁금한 것 매로 반겨주니 고맙소잉.


암, 그래야제. 7기는 모두 책임지고 데불고 오소.
언넝언넝 싸게싸게 후딱 해불고 냉큼 달려오시오.
돌머리를 깨고 눈알맹이를 빼서라도 다 헤치워불고
착한 몸매 좋아하는 정화에게 원고 정리라도 좀 시켜서리. 알긋제?
한 명이라도 빠지면 죽~~는 당. ㅎㅎㅎ

그놈의 트랜스퍼 플랫폼에는 언제나 꽃다발을 보낼 수 있으려는지...
언넝 싸게 해불어~ 꽃도 시들고 맴도 잊어먹겄당.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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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18:09:41 *.210.3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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