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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기도의 형식 중에 화살기도라는 것이 있다.
명칭의 어원은 옛날 세상 가장 빠른 것이 화살 이었는데 말 그대로 바람 같이 날아가 과녁에 소원이 꽂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애용하는 기도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법칙이 따른다.
1. 지극한 정성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 되었던 ‘전설의 고향’ 프로그램의 장면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어머니 세대 분들은 소원을 빌시 꼭 이른 새벽 시간에 일어나 정화수 한 그릇 떠다놓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를 올렸다.
진심어린 이 같은 기도는 에너지가 되고 파동이 되어 세상을 향해 전달이 되었고 산신령 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도의 반은 정성이다.
2. 개인의 노력
어느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이렇게 소원을 간구 하였다.
“신이시여, 나에게 로또 복권 당첨의 기회를 허락하소서.”
간절히 빌고 비는 염원에 보다 못한 신이 꿈에 나타났다.
“너의 정성이 갸륵해서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 그런데 제발 로또를 먼저 사고 나서 이야기하려무나.”
이 이야기는 소원을 빌 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개인의 노력이 먼저 수반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이십대 초반 무언가의 열병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몸이 아프고 마음 둘곳 몰라 방황하는 가운데 우연히 대학 교정내 벽보판에서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하나의 전단지를 발견 하였다.
‘소록도 하계 봉사자 모집.’
소록도? 문둥이 환자들이 살고 있다는 그 소록도?
미쳤나. 그런 곳에 더구나 개인 경비를 들여 방문하는 이유가 뭐지라는 의문 속에 나도 한번 가볼까 라는 호기심이 들던 차,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그 섬은 상처투성이 손을 내밀었다.
문드러진 살과 몸, 코가 없고 귀가 없는 얼굴의 그들을 직접적으로 처음 만나 두려워 가까이 가지 못하는 가운데, 라면을 함께 먹자고 권하는 노인 내외분의 성의를 나는 무시하고 도망을 올수밖에 없었다.
무서워서, 겁이 나서, 문둥이 병이 옮을까봐. 구차한 변명을 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네들은 한평생 일그러진 육신을 어렵게 이끌고 새벽 4시만 되면 지팡이에 흔들거리는 몸을 의지하여 교회로 향한다. 그리고 뜨겁게 하늘의 보이지 않는 그분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런데 그런 그네들의 기도 제목은 웃긴다.
자신을 버린 이들을 욕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힌 사무치는 원망감을 한탄하고 하소연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에 자신의 사무치는 고통에 자신의 병고를 낫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김일성 부자의 회개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서
이 땅의 동량인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등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도가 먼저이고 우선이다.
부끄러웠다.
매일 갈 곳 몰라 방황하는 나의 길을 밝혀 주소서 라고 생떼 쓰듯이 기도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는 오늘도 행운을 바라는 기도를 올린다.
발뒤꿈치를 대고 턴을 하면 소원을 들어 준다는 그 혹한 발림에 또 목이 메여 불쌍한 중생은 오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나는 어떤 소원을 빌고 있나?
우린 무엇을 소원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