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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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아시나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한 번쯤은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듯 해요. 추리소설 작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신 분인데 많은 작품을 독특한 시각으로 상상치 못한 트릭으로 그려 낸 것들이 많아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지요. 오늘 저는 예전에 읽었던 이 분의 책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책인데요, 두 천재의 머리 싸움이 꽤나 흥미진진한 책이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결말이 궁금해서 손에서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살인범도 처음에 다 가르쳐 주는데 경찰들은 계속 찾아내지 못하거든요. 어떤 단서도 살인범을 지목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해서 계속 눈을 떼지 못했어요.
딸과 함께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야스코의 앞에 나타난 옛 남편 신지.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됩니다. 옆집 천재 수학 선생 이시가미가 그녀를 도와 살인 사건을 은폐해 주고, 이를 풀지 못한 경찰은 또 다른 천재인 물리학자 유가와에게 도움을 청하죠. 하지만 사건은 파헤칠수록 더욱 더 모호해져 가고, 모든 단서는 그녀 야스코가 아니라 수학 선생 이시가미를 가르키게 됩니다. 모든 것은 이시가미가 계획한대로 자신의 죄가 되고 야스코는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는 그녀를 사랑했거든요.
사랑하는 그녀가 살인을 저지른 것을 우연히 알게 되고 그는 철저히 그 사건을 덮습니다. 그 뿐아니라 누군가 범인이 나타나야 하게 된다면 그건 제 자신이 되도록 만들죠. 사랑 하나만으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정말 대단한 사랑이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천재들의 두뇌싸움도 아니고, 이시가미의 사랑에 대한 감탄도 아닙니다. 어쩌면 책을 읽으신 분들도 스쳐지나갔을 법한 장면 하나를 말해 보려 해요. 바로 이시가미가 그 대단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장면이죠.
이시가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대인관계에는 매우 서투른 사람이었어요. 그는 고등학교 수학선생을 하며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어요. 흥미있는 문제는 밤을 꼬박 새어가며 풀어내는 그런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그의 삶 어디에도 그런 피끓는 열정을 느낄 만한 곳이 없었어요. 결국 그는 자살을 결심하게 된답니다. 그가 막 목을 메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리고 옆집에 이사 온 야스코가 인사를 하죠. 별다른 인사도 아니예요. 그저 옆집에 사는 이웃을 향한 옆집 사람이라는 잘 부탁드린다는 평범한 인사였죠. 하지만 이시가미에게는 그것이 아니었어요. 그 순간 그는 다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먹는 답니다. 그녀의 미소 띤 인사가 그에게 다시 삶의 활력을 불어 넣은 것이지요. 단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한 마디가요.
그렇게 그는 사랑에 빠집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랑의 정도가 아니라 그녀는 이제 그에게 삶의 의미가 된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는 그녀의 어떤 모습이든 감싸줄 용의가 있으며, 그녀 덕에 얻게 된 여분의 삶을 그녀를 위해 아낌없이 바치게 되는 것이죠.
그녀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따뜻한 미소를 지닌 인사 한 마디였습니다. 특별한 애정을 담은 것도 아니구요. 이사 온 첫날 옆집 사람에게 그저 건넨 인사 한 마디였습니다. 뭐, 방금 이사 온 설렘 정도가 담겨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인사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미인일까요? 이시가미의 눈에는 그리 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초인종을 울리고 그리고 자신을 보고 환히 웃고 있는 여자, 여신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었나봐요. 전 남편은 그녀를 괴롭혔고, 뭐,, 형사들도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반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결국 그녀의 인사가 이시가미를 감동시키고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감수하게 만든 것이지요. 과연 그녀는 어떻게 인사를 한 건지 보고싶은 기분입니다.
저는 저의 사부님께 인사를 백번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답니다. 세상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닫혀 있지 않다는 말과 함께요. 그 순간까지 저는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지난 시절의 상처들이 저를 그렇게 꽁꽁 묶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요. 저에게 세상은 그랬습니다. 나 자신을 지켜야 하는 장소였지요. 밀려오는 파도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요. 그래서 그렇게 꽁꽁 얼어버린 얼음공주처럼 환히 인사를 하려는 제 자신이 어느 덧 어색해져버렸지요.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다시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잔뜩 웅크리고 한동안 탐색을 끝마친 후 어색한 웃음을 날렸습니다. 거절과 거부가 두려워 주변의 자신의 벽을 쌓고 그 안에 깊이 틀어박힌 채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스스로가 생각했지요.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언제나 눈부신 햇살 속에서 환히 웃는 제 자신을 꿈꾸었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을 보호하려던 것이 언젠가부터 세상과 동떨어진 나를 만들고 또 다른 상처가 되어왔습니다.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에서 상처 받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 정말 좋은 의도였는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우리는 욕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우리를 가두는 것이 상책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그 안에 살아가고 있구요. 인사는 모든 것에 시작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인사부터 시작하잖아요.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과 신뢰와 사랑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처음 만났을 때의 인사가 없다면 어느 것도 시작할 수 없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더 밝은 곳에서 환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오늘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지요. 미스코리아의 미소는 아니더라도 상관없어요. 우리는 어차피 미스코리아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저 별 생각없이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하면 된답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불어 넣고 사람들에게 그 온기를 전해 줄 거예요. 그렇게 한 번씩 한 번씩 인사를 하다보면 어느새 당신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고 인사를 날리는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거예요.
저요? 저는 여전히 조금은 어색한 저를 느끼며 인사를 날리는 중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앞집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톨게이트에서 계산해주시는 직원 분에게 인사를 하고, 주유소 아저씨와도 인사를 하지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면서 조금씩 더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제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하루씩 하루씩 조금씩 조금씩 인사하는 사랑스러운 저를 만나게 됩니다. 저를 향해 웃어주는 많은 분들도 만나게 되구요. 오늘도 저는 웃으며 세상을 향해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