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 조회 수 258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09. 퀴즈
병원의 아침은 시끌법적, 와글와글 합니다. 건강체조로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거나,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낄낄대는 유머로 서먹한 아침을 골탕 먹이기도 합니다. 지루한 직장생활을 즐겁게 시작하려는 의도만은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많은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수요일 아침, 명랑한 웃음을 조장하는 ‘퀴즈 조회’ 시간! 2명씩 팀을 이뤄 겨루는 팀 대항 형식과 부담없는 선물을 주는 가벼움이, 직장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직원들은 이 시간을 좋아합니다. 퀴즈 담당 직원이 문제를 출제했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OX 퀴즈 입니다.
캥거루 아시죠? 캥거루는 과연, 뒤로 뛸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뒤로 뛸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두 손으로 ‘O' 모양을 만드시고
뒤로 뛸 수 없다고 생각하시면 손으로 ‘X' 표시해 주시면 됩니다.“
짝궁은 내가 어케 아냐 는 눈빛으로 머리를 좌우로 흔듭니다. 주위는 모두 ‘X' .
‘캥거루가 앞으로 뛰는데, 뒤로 못 뛸 이유가 있을까?...’ ‘O'를 찍었는데, 우리만 정답입니다.
“두 번째 퀴즈입니다. 조선시대 성균관에서는 유생들에게 복날마다 나누어주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초복에는 개고기, 중복에는 참외를 주었는데요. 말복에는 ‘이것’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요?“
1) 수박 2) 복숭아
수박이 좋아서 선택했는데, 또 우리만 정답! 우연히 찍은 로또가 이렇게 당첨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연속으로 맞추니, TV 퀴즈쇼에서 정답을 맞춘 것처럼 기분이 좋네요. 이게 사람일까요? 삼관왕을 이루리라는 의욕이 불끈 솟았습니다.
“ 마지막 세 번째 주관식 퀴즈입니다.
다음 중 공통으로 해당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1) 악마는 바빠서 사람들을 찾아 갈 수 없을 때 ‘이것’을 대신 보낸다. -탈무드-
2)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이것’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 -플러-
3) ‘이것’으로 만든 친‘구는 ‘이것’처럼 하룻밤 밖에 안 간다. -로거우-
바로 손을 들었습니다. 삼관왕은 ‘내 꺼’ 라는 자신감이 생겼지요.
“정답! ‘돈’ 이요”
“와우...‘돈’ 네...틀렸습니다.”
이런.. 정답이 ‘술’이라니.. 이관왕에 그쳤지만 의문이 들더군요. 퀴즈가 나왔던 시대적 배경이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21세기의 종교는 다이어트와 운동이라는 말처럼, 요즘 사람들은 술을 많이 먹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았을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한 남자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왔다가 사망했습니다. 지체장애 등록증을 지닌 마흔 살의 남자였지요. 80 세의 노모는 병원과의 연결을 원치 않았습니다. 돈 때문에 부모를 버리는 경우는 가끔 봤지만, 배 아파 낳은 자식의 죽음을 모른체 하는 어미의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장애와 가난 일까요? 어려움과 문제를 지닌 수많은 환자들은 그만큼의 사연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두들 돈의 바다에 빠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병원 밖이라고 다를까요? 병원은 인생의 축소판이고, 단지 좀 더 적나라하게 인간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 일뿐.. 돈 좋은 거야, 모르는 바보가 없겠지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쇼핑 장소를 잘못 택한 것이다.” 쇼핑 매니아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명언으로 뽑을 만한, 말콤 포브스의 말은, 돈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좌절감을 주고, 자기 밖에서 불행의 이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이유가 되어 주었습니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이어야 할텐데.. ‘그것’을 위해서라면 악마가 될 수 있는 것, 친구와 형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할 텐데..그게 과연 술일까? 아침부터 저는 왜 열을 올리고 있을까요? 왠지 억울하군요. 정답을 맞추었지만 삼관왕을 이루지 못한 탓일 겁니다.
#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 탈레스(Thales BC 624?~BC 546?) -
대부분의 서양철학사 책들은 탈레스를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20세기의 대표적 지성으로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도, 자신의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서양 철학은 탈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탈레스에게 이런 영예로운 호칭을 부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가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만물의 기본원리를 탐구한 첫 번째 사람’ 이기 때문입니다.
탈레스는 비가 오면 물이 강으로 흐르고, 넓은 바다에서 수증기로 상승하면, 구름을 통해 비가 되어 내려오는 순환구조를 통해, 모든 사물은 물에서 생겨 다시 물로 돌아간다고 여겼습니다. 현대적인 시점에서 보면 엉터리 같습니다. 그러나 물은 모든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사람의 몸도 70% 의 물로 구성되어 있고,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바닷물과 비슷한 성분의 양수 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탈레스는 물음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던진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현대에도 벼락에 맞아 죽으면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성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문제에 대해서,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답을 하던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비교해 본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자연과학적 사상에 입각하여 합리적 사고를 했던 첫 번째 사람이었기에 ‘서양철학의 창시자, 철학의 아버지’ 라는 호칭이 가능했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 탓이었을까요?
어느 날, 탈레스는 3가지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탈레스는 대답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두 번째 질문
“그럼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타인에게 충고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럼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탈레스는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다.” 라는 대답을 남겼습니다.
놀라워라. 2500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은 똑같군요.
또 다시 생기는 의문!
만물의 근원은 ‘물’이 아닐까요?
#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대학을 갈 때, 무슨 과를 선택할까?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 할까?
결혼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뒤돌아보면, 인생은 퀴즈의 연속입니다. 왜 원치 않는 문제 덩어리들이 나에게 다가오는지? 삶의 전 기간에 걸쳐 다가오는 퀴즈의 정답이 무엇인지?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삶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총합이고, 선택을 강요하는 중요한 퀴즈는, 출제될 때마다 저의 가치관을 요구했지만, 저는 세상에 내놓을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그 댓가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인생이라는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고든 리빙스턴 Goorden Livingston 은 존스 홉킨스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조울증이 심했던 첫 아들을 자살로, 막내는 백혈병으로 13개월 사이에 두 아이를 잃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의 절절한 깨달음과 지혜로운 통찰을 담은 에세이집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을 읽고 감탄한 저는, 제가 작곡한 노래의 첫 소절 가사를 이 책의 제목으로 인용했었습니다.
그는 ‘지도가 지형과 다르다면 지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인생지도를 갖고 있지만 사는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조금씩 수정이 되고, 결국 ‘인생이란 머릿속의 지도를 내가 걷고 있는 땅에 맞게 그려가는 과정’ 이라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에야,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 어울리는지 알게 되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난 뒤에야 자신의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되는 경험,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실수를 통해 깨달은 바를 하나씩 머릿속 지도에 담아가다 보면, 인생이라는 항해가 조금씩 순탄해지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위로를 얻게 되는 책입니다.
시행착오로 얻게 되는 깨달음이 모여, 지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라면, 생은 결국 자신만의 퀴즈를 풀어가는 과정의 여정이겠군요. 아내는 ‘왜 복권 당첨이 안 될까?’ 딸아이는 ‘왜 살이 안 빠질까?’ 아들은 ‘어떻게 해야 게임레벨을 올릴 수 있을까?’가 인생의 퀴즈랍니다.
병원은 사람 백화점 입니다. 수면제를 8알이나 먹었는데, 하필 중국산이라 배탈이 나서 온 아저씨. 고스톱 치다가 칼에 찔려 실려 온 사람, 입원 중에 무단외출로 집에 가서 가족들과 저녁식사 잘하고는, 새벽에 아파트에서 투신을 한 할아버지, 남자 친구와 함께 약물을 마신 이쁜 아가씨, 가난하지도 않은데 부모를 버리는 사람, 가족들이 다 외면하는데 사촌동생이 보호자 역할을 맡는 사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어도 병원에서 환자들과 지지고 볶다 보니, ‘이야기 백화점’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리고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자꾸만 늘어갑니다. 타인에 대한 궁금증부터 나에 대한 궁금증까지, 사람의 작은 차이가 커다란 인생의 차이로 바뀌는 이유, 채워지지 않는 사람의 욕망, 마더 데레사 같은 직원과 마키아벨리 같은 직원이 공존하는 조직의 사람들까지...
‘인간은 자신을 뛰어 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니체가 말했지요.
궁금하군요.
그 ‘무엇’이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