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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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언제 책 써요? 응…올해 써야 해. 쓰고 있어? 응…조금씩 쓰고 있어.”
아이는 웃는다.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엄마를 못 믿어워 하는 웃음인 것 같다. 가끔씩 물어본다. 언제쯤 책이 나오는 거냐고…집안 살림은 평소에도 주말에만 하던 사람이라 엄마의 부재를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다. 지난 한해 동안 공부한다고 일찍 귀가하는 엄마를 보며 가끔 안부를 묻는 아이다. “그 공부 언제 끝나냐?” 시어머니의 물음은 이렇게 다르다. 더한 사람은 남편이다. 이제 그런 것 하지 말아라. ‘나는 생각한다. 이제 시작인데…앞으로 계속 이러고 살 건데.’ 2박3일의 여행이라는 말에 남편은 다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이런 가족들을 뒤로하고 주말에 수료여행을 다녀왔다. 지도교수가 없는 수료여행이다. 아쉬움을 안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즐거웠다. 천년 고도 경주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부터 여러 번 경주를 찾았었지만 2박3일의 여행에서 동기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그 동안 보았던 경주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경주를 보았다고 했다. 고도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냥 보면 허허벌판이지만 그 역사를 알고 보면 허허벌판이 아니라 그곳에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들의 효孝가 있고 남녀의 사랑도 있다. 고승들의 자취들도 있고 번화했던 도시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이곳에서도 통용된다. 경주 토박이 동기생과 토박이 가이드덕분에 품격있는 문화수료여행이 되었다.
“변화경영연구소의 문을 두드릴 당시의 저는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에 몰입할 것이 필요했습니다. 옮긴 일터에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업무성과와 업친데 덥친격으로 닥쳐온 투자의 실패, 마음자리를 지켜오던 사람과의 불협화음. 모든 것이 삶의 의욕을 꺽어 버린 상태인 나날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무엇하나 시작할 수 없는 에너지원 고갈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미량으로 자신을 충전하고 있을 즈음 연구소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미친 듯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런 물음에 적합한 것이 연구원이었습니다.” 연구원지원하기 전의 나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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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틀에서 나를 빼내서 새로운 환경에 쳐 넣고 싶은 욕망이 꿈틀 대던 나에게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직장인으로서 마음을 내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필수 필요시간이 많았다. 이것이 더욱 나를 끌어당겼다. 도전이라고 할 만큼 만만치 않은 일이 가지는 매력이 있었다.
한 해를 보내며 일년전과 바뀐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글쓰기에 조금 소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7년 동안 거의 매일 써오던 메일은 업무상 쓰는 의미도 아주 조금 있었지만 좋아서 하던 일이었다. 좋은 시를 고르고 그것을 옮겨 적으며 마음은 촉촉해진다.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며 행복해했다. 가끔씩 오는 답장은 ‘내가 글을 쓰는 재주가 있나..’ 하는 마음이 갖게 만들었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잘하는 일…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내 안에서 비교한다면…국민학교 시절 교내 사생대회에서 그림을 그리면 교실 뒤 게시판에 잘 그렸다고 붙여주던 일. 한번인가 우수상을 받았던 일. 이것이 생각나는 전부이다. 글쓰기는 좋아하지 않았다. 제일 싫어 하는 일이 일기를 써야 하고 그것을 검사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학창시절의 나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필요에 경우에 제한적인 글쓰기가 전부였다. 대학 다니면서 시험을 보거나 보고서를 내는 일, 회사에서 승진시험을 보는 일, 정도가 전부였다. 지점장 발령을 받은 후 전임자가 해오던 일을 인수 받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다. 증권회사에서 통상적으로 발송하던 시장동향을 알리는 메일이었다. 전임자가 하던 일을 그냥 끊어 버리기가 뭣해서 그 뒤를 이어서 메일을 쓸려고 하다가 생각이 났다. 시장정보는 시장에서 넘쳐난다. 어느 것이 좋은 정보인지 그것을 가리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나까지 보탤 이유가 없다. 다른 글을 써보자. 시집을 찾기 시작했다. 100%나의 글로 받는 이에게 감동을 일으키기는 어려우니 훌륭한 작가들의 시를 써보는 것이 좋겠다. 시어의 아름다움에 마음은 움직인다.
그때부터 좋은 시를 고르고 짧막한 에피소드를 적었다. 글을 쓰며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시집을 뒤적이는 시간도 좋았고 내가 적은 글을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도 좋았다. 종종 답장이 온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인사를 한다. 메일 잘 받고 있다고. 시가 참 좋다고. 글도 편안해서 좋다는 피드백이 오곤 했다. 이것이 글쓰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내게 만들어 주었다.
면접여행 때 사부님의 첫 질문은 “본인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냐?”였다.
내 대답은 이랬다. “글을 잘 쓴다기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고 답했다.궁금했다. 그것도 글이라고 쓰는 거냐? 이런 뜻인가…그렇지.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지. 그냥 편안하게 쓰기는 하지만. 편지 글은 자주 써보았다. 다년간의 연애편지질에서 능력이 쌓인 것이 아닐까 한다. 궁금했다. 이 질문을 왜 하셨을까. 일년이 다 지나갈 무렵 여쭈어봤다. 면접여행 때 이런 질문을 하셨는데 왜 그러셨어요? 스승의 대답은 “너의 일터가 시와는 거리가 멀고 문학서를 읽는 곳이 아닌데 다른 것 같아서 물어봤다” 고 하신다.
일년전과 지금은 분명히 달라졌다.
글쓰기에 아주 조금 있었던 자신감이 없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글은 이상해져 가는 느낌이다. 정말로 이상해져 가는지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늘어서인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아무튼 지금의 느낌은 그렇다. 그럼에도 희망이 생겼다. 목표가 생겼다. 세상에서 내가 쓸 수 있는 최대의 노력으로 첫 책을 내어 봐야지. 그리고 일단은 세 권까지는 책을 내 봐야지. 이유는 간단하다. 편집 일을 이십 년 이상 하셨고 지금은 출판사를 하시는 대표의 이야기였다. “세 권의 책을 내는 사람은 작가로서 삶을 살아갈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그래서 자신은 첫 책을 내는 저자에게 세 권의 책은 자신과 함께하자고 계약서를 쓰신다고 했다.
삼십일 년이다. 지금의 일을 해온 햇수이다. 이곳에서 돈을 벌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살아온 시간의 삼분의 이를 지탱해준 직업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애환이 함께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냈던 일이라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돈을 다루는 일이다. 어떤 일보다 행복한 일이지만 인간의 탐욕이 범람하는 시장이다. 이제 좀 천천히 살아야지. 본업에서 줄인 속도가 책을 읽고 쓰는 작가의 삶으로 옮겨가기를 바란다.
^^ 행님은 영웅의 여정의 길을 잘 가고 있네요.
단군의 후예 하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영웅은 그동안의 삶의 방식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데
모험을 떠나면 위기도 오고, 갈등도 생기고, 어려움을 겪게 되죠.
글을 잘 쓴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자기 평가가 어쩌면 갈등이지 심연인 것 같아요.
결국 이 시기를 묵묵히 견디고, 보내고 나면 첫 책이 완성되면서 부활하게 되겠지요.
돕는 이는 사부님도 계시고, 만날 편집자, 그리고 우리 팔팔이 외 등등
책이 출간되면 세상으로 귀환.
행님의 세권의 책이 나오고, 그 이후까지도 옆에 있을게요. ^^
원래 자기 능력에 대한 불확신은 현재의 레벨에서 다음 단계의 레벨로 올라가기 직전에 겪게 되는 수순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자가 발전할 여지를 발견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처음 연구원이 되면서 저를 알아봐 준 사부님께 감사했고, 연구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저의 부족함을 알게 해준 연구원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서연 언니도 저를 일깨워 준 연구원 중 한 명입니다.
무엇보다도 행님에게 감사하고 싶은 것은, 제가 닮고 싶은 롤모델이 되어준 것입니다. 저는 행님처럼 제 분야에서 성공도 하고 싶고 삶 속의 예술성과 자유도 누리고 싶습니다. 행님이 그게 가능하다는 걸 먼저 보여주었으니 저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 책을 냄에 있어 비록 초보인 듯 보이지만, 글은 기교가 아닌 사상과 인격에서 나오는 것인만큼 언니는 충분히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줄 것이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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