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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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면 알게 된다더니... 도착하자마자 마드리드에서 독감이 걸렸고, 바르셀로나는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세상에 보고 만나야 할 예술가와 작품은 많았고, 음식은 짜고 체력은 부족하고, 아내에게는 자꾸 역정만 낸다. 조금 깨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와보니 내 몸과 마음, 사방이 벽과 편견 투성이이다. 조금은 괜찮은 녀석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올시다. 악마같은 개새끼일 뿐이다.
여기 패여 있는 홈이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패여 있는 홈을 따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홈을 벗어나 흐르는 물줄기를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아, 나는 얼마나 좁디 좁은가. 얼마나 작디 작은가.
스페인 한복판에서 갑자기 왜 도쿄로 간 이상이 떠오른 것일까? 이상은 왜 그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도쿄를 간 것일까? 돈도 없는 폐병쟁이가 기후가 좋지 않은 도쿄로 간다는 것은 벌레가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일일진데... 모던 보이라 곧 죽어도 최첨단의 신시가지가 한번 쯤 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새 파여진 홈을 따라 자신의 최후를 향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막다른 그 골목에 이르러서 그제서야 ‘이게 나이구나’를 알게 된다. 때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아마도 운명이리라.
그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아마도 발심(發心)이 그 시작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매일 매일 하는 것의 배열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예전의 ‘나’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습習’이다. 습관은 나를 하늘로 날려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동시에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추락의 통로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은 한몸이다. 서로에게 흔적을 새기면서 나아간다. DNA의 염기 서열처럼 나선형으로 꼬여 있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랍 세력의 지배와 서로 다른 세력 간의 800년 간의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없었으리라. 서로 다른 문화가 노끈처럼 꼬여 새로운 형상을 창조한다. 신앙심 깊은 류마티즘 왕따, 가우디는 그 혼혈의 대지 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쌓아 올린다. 아마도 칠십 평생 그에게 삶이란 것은 고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을 터인데...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데도 그가 돌로 빚은 성당 안은 온통 찬란한 빛이다. 아, 환하디 환한 상처의 꽃이여.
자신에게 주어진 것 - 그 뿌리는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곳에는 천개의 길이 놓여 있고, 천개의 사랑이 피어 있다. 다만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천개의 하루와 천개의 땀방울이 필요하다. 거기에 천개의 기쁨을 더할 수만 있다면, 그대의 상처도 환한 꽃으로 피어나리라. 부디 그러하리라.
비오는 바르셀로나의 아침, 카사밀라를 보며
P.S. 한 주 쉰다고 했는데, 마침 감기도 나아가고 와이파이도 되기에 두서없는 독백을 띄워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