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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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혈액형은 AB형이다. 남편은 O형이고, 큰아인 A형, 막내는 B형이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네 식구의 하루는 혈액형만큼이나 다양하다.
남편은 오후에 출근해서 날이 바뀐 후에야 집에 돌아온다. 오늘은 1시 10분에 들어왔다. 매일 같은 시각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 무렵이다. 씻고 나서 저녁을 먹고, 가끔(?), 자주(!) 술도 마신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새벽 3시가 넘는다. 그러면 시계보다 더 정확한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마당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아저씨'라 칭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계바늘처럼 생활하는 '아저씨' 얘기를 나누면서 식탁을 정리한다.
남편이 하루의 피곤을 잊고 잠이 들면, 난 또 하루를 시작한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6시가 넘고 졸음이 온다. 불을 끄고 누우면 큰 아이 학교 가는 시간 맞춰 7시 50분에 알람이 울리고 8시 20분쯤 등교를 한다. 그때부터 막내는 아침을 먹고, 참새처럼 떠들다가 9시 30분쯤 유치원에 간다.
이미 잠이 다 달아난 나는 또 책을 펴들던가, 작은 아이가 켜 논 컴퓨터 앞에 앉는다. 거의 대부분은 자고 있는 남편 옆에 엎드려 책을 보게 되는데 그러다가 잠이 든다. 단잠에 빠질 즈음..남편은 깨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내겐 먹는 게 아주 귀찮아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같이 먹는다.
그리고 1시가 조금 지나면 큰 아이가 초인종을 누르고,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며 뛰어 들어온다. 옷을 갈아입고 학원으로 향하고, 남편은 출근을 한다.
그리고 2시가 조금 지나면 막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엄마, 나야` 하며 뛰어 들어온다. 참새 열 마리의 입을 가지고서.
그리고 4시가 조금 지나면 큰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다. 나의 '문 열어주기'가 끝나는 순간이다. 더불어 참새 백 마리가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6시를 전후해서 저녁식사를 참새 천 마리와 먹고 나면, 세상에서 젤 무거운 건 눈꺼풀임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들은 9시 쯤 잠자리에 든다. 그때부터 참새 만 마리를 한 마리씩 재우기 시작한다.
10시가 넘으면, 나는 또 하루를 시작한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들어올 때까지는!
(이렇게 적고 나니 나 스스로도 어떻게 하루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온통 조각 난 시간들뿐이다. 아 ~ 갑자기 기운이 쪽 빠진다. 잠깐 동안 하루를 다 살아버린 것 같다. 내가 정말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인가?)
오늘은 여성학 수업이 있는 날이다. 큰 아이 학교 가고 나면 바로 챙기고 출발한다. 막내는 남편과 아침을 먹을 것이다. 여전히 참새처럼 떠들면서.. 난,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같이 시장을 보던가 아니면 간단한 외식을 하고서 집으로 올 것이다.
혈액형만큼이나 다양한 한 가족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이 거의 다르기 때문에 밤엔 남편이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고, 아침엔 아이들이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게 된다. 평일엔 한 끼도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 나는 ... 골고루 다 자기도 하고, 골고루 다 먹기도 한다. 무척 환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결혼이다...
***
2년 전에 썼던 글이다.
아이들은 4학년, 2학년이 되었고, 내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났고, 책을 더 많이 읽는다.
아무 때나 자는 조각 잠에는 익숙해졌고,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오랜 꿈인 책 쓰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정말이지 궁금하다.
IP *.239.124.195
남편은 오후에 출근해서 날이 바뀐 후에야 집에 돌아온다. 오늘은 1시 10분에 들어왔다. 매일 같은 시각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 무렵이다. 씻고 나서 저녁을 먹고, 가끔(?), 자주(!) 술도 마신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새벽 3시가 넘는다. 그러면 시계보다 더 정확한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마당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아저씨'라 칭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계바늘처럼 생활하는 '아저씨' 얘기를 나누면서 식탁을 정리한다.
남편이 하루의 피곤을 잊고 잠이 들면, 난 또 하루를 시작한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6시가 넘고 졸음이 온다. 불을 끄고 누우면 큰 아이 학교 가는 시간 맞춰 7시 50분에 알람이 울리고 8시 20분쯤 등교를 한다. 그때부터 막내는 아침을 먹고, 참새처럼 떠들다가 9시 30분쯤 유치원에 간다.
이미 잠이 다 달아난 나는 또 책을 펴들던가, 작은 아이가 켜 논 컴퓨터 앞에 앉는다. 거의 대부분은 자고 있는 남편 옆에 엎드려 책을 보게 되는데 그러다가 잠이 든다. 단잠에 빠질 즈음..남편은 깨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내겐 먹는 게 아주 귀찮아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같이 먹는다.
그리고 1시가 조금 지나면 큰 아이가 초인종을 누르고,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며 뛰어 들어온다. 옷을 갈아입고 학원으로 향하고, 남편은 출근을 한다.
그리고 2시가 조금 지나면 막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엄마, 나야` 하며 뛰어 들어온다. 참새 열 마리의 입을 가지고서.
그리고 4시가 조금 지나면 큰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다. 나의 '문 열어주기'가 끝나는 순간이다. 더불어 참새 백 마리가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6시를 전후해서 저녁식사를 참새 천 마리와 먹고 나면, 세상에서 젤 무거운 건 눈꺼풀임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들은 9시 쯤 잠자리에 든다. 그때부터 참새 만 마리를 한 마리씩 재우기 시작한다.
10시가 넘으면, 나는 또 하루를 시작한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들어올 때까지는!
(이렇게 적고 나니 나 스스로도 어떻게 하루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온통 조각 난 시간들뿐이다. 아 ~ 갑자기 기운이 쪽 빠진다. 잠깐 동안 하루를 다 살아버린 것 같다. 내가 정말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인가?)
오늘은 여성학 수업이 있는 날이다. 큰 아이 학교 가고 나면 바로 챙기고 출발한다. 막내는 남편과 아침을 먹을 것이다. 여전히 참새처럼 떠들면서.. 난,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같이 시장을 보던가 아니면 간단한 외식을 하고서 집으로 올 것이다.
혈액형만큼이나 다양한 한 가족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이 거의 다르기 때문에 밤엔 남편이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고, 아침엔 아이들이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게 된다. 평일엔 한 끼도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 나는 ... 골고루 다 자기도 하고, 골고루 다 먹기도 한다. 무척 환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결혼이다...
***
2년 전에 썼던 글이다.
아이들은 4학년, 2학년이 되었고, 내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났고, 책을 더 많이 읽는다.
아무 때나 자는 조각 잠에는 익숙해졌고,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오랜 꿈인 책 쓰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정말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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