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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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통나무를 쪼개십시오.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돌을 드십시오. 거기서 나를 볼 것입니다.” *
<낯익은 거리에서 신비를 보다, 사진/양경수>
일상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났었다. 모험을 떠난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내 눈이 허락하는 것만 볼 수 있었고, 내 감각이 느끼는 것만 알아챌 수 있었다. 뭔가 아주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헛고생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살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까. 모든 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얻었으니까.
습관적으로 대하는 일상은 무채색이다. 색이 없을 뿐 아니라 맛도 냄새도 없다. 가슴은 차갑게 식어 가고 나 스스로를 바라보게 해주는 힘조차 시들해진다. 엔트로피의 법칙대로 가만히 두면 모든 것은 흩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때 난 '모든 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눈' 을 만났다. 바로 '사진'이었다. 사진은 주변의 모든 사물과 가족들, 심지어 나의 모습까지 포함한 일상의 순간을 담아 바라보게 해준다. 사진을 천천히 바라보면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과 맞닿게 된다. 그렇게 삶은 비밀을 드러내고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슬러 균형을 잡아간다. 이 책은 그것의 기록이다. 사진을 통해 일상으로부터 특별함, 신비함을 발견해낸 흔적이다. 사진으로 생각하고, 사진으로 명상해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현대인들에게 일상은 모든 것이다. 현대 예술은 스스로 벽을 허물고 일상 속으로 들어왔고, 현대 철학 또한 개인의 일상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심지어 종교마저도 내밀한 일상의 삶으로 스며들어왔으며,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권력자들의 기발한 속임수임이 드러났다. 그러니 당신이 하나 뿐인 일상 속에서 신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떤 곳에서도(심지어 천국에 가더라도) 아무것도 발견할 것은 없다. 눈앞의 '지금 여기' 일상을 살지 못한 다면 어디에서 삶을 경험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특별한 순간이 일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스러움은 기도, 명상, 금식 같은 훈련을 통해서만 경험된다고 믿는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이곳 일상 속에서 특별함, 성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란 얘기다. 그리고 현대인의 일상적인 기록도구인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습관적 사진 찍기'에서 더 나아가 '일상의 기록과 사색을 위한 사진생활'을 보여주고자 한다.
덧붙여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의 일상은 어는 누구도 대신 기록하지 못한다' 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자신만의 일상적 기록을 남기도록 부추기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목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쉬운 언어로 떠들어 대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지금의 시대가 그런 작업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정치를 대중들이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고 소통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그것이 정치 체제를 바꾸고 우리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로 되돌아오지 않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일상은 모든 것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바쁘다고 일상에 관심이 없는 당신은 속고 있는 것이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자세히 관찰하며 글로써 정리해보기를 권한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했고 이 책 속에 그 증거물을 남겨두었다.
일상은 신비다. 신비를 경험하는 기적은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현실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기에 나는 끈질기게 내 앞의 통나무를 쪼갤 것이며, 발밑의 돌을 들어 볼 것이다. 거기에 있다.
바로 거기에 있다.
* : 도마복음 제77절